각학(閣學)을 지낸 어떤 선비가 어렸을 때 서당에 다녔다. 매번 시장을 지날 때마다 늘 한 노인에게 가서 호떡 몇 개를 사서 품에 넣고 서당에 가는 것을 습관처럼 여겼다. 어느 날, 다시 호떡을 사러 갔는데, 노인은 갑자기 가게 문을 닫고 그를 앉히더니 말했다.
“내가 보니 네 신기가 맑고 밝으니, 범상한 인물이 아니다. 장차 네게 부탁할 일이 있을 터인데, 나를 따르겠니?”
선비가 “무슨 일이세요?”라고 묻자, 노인은 “오늘 밤은 여기서 자거라. 저녁이 되면 저절로 알게 될 거야.”라고 말했다. 선비는 자신이 어려서 조금이라도 늦게 돌아가면 노모께서 집 벽에 기대어 기다리실 텐데, 어찌 감히 밖에서 잘 수 있겠느냐며 거절했다. 노인은 탄식하며 말했다.
“나는 네가 스스로 결정할 수 없다는 것을 알고 있었다. 그러나 이 또한 인연일 테니, 그저 한번 말해본 거야."
다음 날, 선비가 아침 일찍 그 가게 앞을 지나가는데, 사람들이 담처럼 둘러싸고 구경하고 있었다. 무슨 일인지 궁금해 군중을 비집고 들어가 보니, 호떡을 팔던 노인이 죽어 있었다. 선비는 문득 마음이 슬퍼져 집으로 돌아와 어머니에게 이 사실과 지난날 노인이 했던 말을 전했다. 어머니는 이를 기이하게 여기며, 그때 노인의 약속에 응하지 않았던 것을 다행으로 여기지 않은 적이 없었다.
그 후 십여 년이 지나, 선비가 과거에 급제하여 한림원(翰林院)에 들어가 휴가를 받아 고향에 돌아가 제사를 지내고, 강가에 배를 댔다. 선비는 우연히 강가에 올라 한가롭게 거닐다가, 자신도 모르게 멀리까지 가게 되었지. 문득 한 사람이 숲 속에서 나와 “태사공(太史公), 별고 없으시오?” 하고 불렀다. 급히 알아보니, 바로 호떡을 팔던 노인이었다. 선비는 놀라며 “어르신께서 어찌 이곳에 계십니까?”하고 물었지. 노인은 선비의 팔을 잡고 나무 아래에 앉아 웃으며 말했다. “자네는 필시 나를 귀신으로 여길 테지. 내가 솔직히 말하건대, 옛날에 자네에게 제안했던 건, 자네에게 신선(神仙)의 골상(骨相)이 있었기 때문이야. 아쉽게도 자네 속세 인연이 아직 끝나지 않았을 뿐이지. 그날 밤 깊이 잠들지 못하고, 시장 어귀에 오가는 발자국 소리가 끊이지 않더군. 일어나 창틈으로 엿보니, 귀신이 그 모습을 나타내는 자가 매우 많았어. 귀신들은 길을 비켜 서로 경계하며 말했어. '진인(真人)께서 악묘(嶽廟)로 가시니, 소홀히 해서는 안 된다'라고. 그때 나는 생각할 것도 없이 뒷문으로 몰래 나가, 외진 골목길과 굽은 길을 따라 절에 이르렀네. 절 앞은 텅 비고 인적이 없었고, 전각 뒤에도 아무것도 보이지 않았지. 오직 한 거지가 남루한 옷을 입고 굶주린 얼굴로 섬돌 아래에서 코를 골며 잠들어 있었네. 불러도 깨어나지 않고, 씩씩거리는 숨소리만 들려왔지. 나는 그가 이상한 사람임을 알고, 그의 곁에 오랫동안 꿇어앉아 기다렸네. 한참 후에야 깨어나 ‘무슨 일이냐?’라고 묻기에, 나는 머리를 조아리며 ‘진인이시여!’라고 불렀지. 거지는 크게 화를 내며 온갖 욕설을 퍼부었지만, 나는 공손하고 조심스러운 태도를 유지했네. 거지는 일어나 욕설을 퍼부으며 떠났고, 나는 그를 따라갔지. 절 뒤로 돌아가니 욕설이 더욱 심해졌지만, 나는 끝까지 조금도 물러서지 않았네. 거지는 마침내 욕설을 멈추고, 발걸음을 날 듯이 옮겼어. 나 또한 급히 뒤쫓아 한 걸음도 떨어지지 않았지. 힘 또한 조금도 부족하지 않았네. 눈 깜짝할 사이에 깊은 산속으로 들어갔어. 거지는 덩굴을 잡고 원숭이처럼 날렵하게 움직이더군. 나는 물러설 마음이 없었기에, 간신히 그를 따라잡을 수 있었네. 마침내 산꼭대기에 이르렀는데, 길은 끊기고 오직 하나의 외나무다리가 맞은편 산으로 곧장 이어져 있었고, 서로 간의 거리는 약 수십 길이었으며, 아래는 깊은 골짜기였어. 거지는 뒤돌아보며 말하기를 ‘자네의 정성은 내가 깊이 깨달았으니, 이곳에서 멈추어도 좋네’라고 했네. 나는 ‘하늘 끝까지, 땅끝까지, 어디든 함께 따르겠습니다. 어찌 이곳에서 멈추겠습니까?’라고 대답했지. 거지는 다시 화를 내며 욕설을 내뱉고는 곧장 외나무다리를 건너갔어. 나는 힘껏 그의 옷자락을 붙잡고 함께 건너려 했으나, 거지는 힘껏 뿌리쳐 밀어냈어. 나는 자신도 모르게 발을 헛디뎌 골짜기 아래로 떨어졌네. 나는 크게 소리치며 몸을 날려 뛰어올라 맞은편 산꼭대기에 올랐어. 머리를 돌려 아래를 내려다보니, 내 몸이 뻣뻣하게 굳은 채 골짜기 아래에 누워 있었고, 거지의 모습 또한 보이지 않았네. 나는 문득 크게 깨달다네. 그 순간 산과 물과 대지와 천 번의 삶과 만 번의 劫(겁)이 모두 환하게 비치며 찰나에 지나가 버린 거야. 오직 이 마음만이 가슴속에 남아 있었지. 그건 참도 아니고 허상도 아니며, 허상이면서 참이었지. 하늘은 이미 밝아오고 있었고, 마음이 이끄는 대로 산에 올랐는데, 바로 황산(黃山)이었네. 그때부터 온몸이 가볍고 날렵해져 마음대로 날아다닐 수 있게 되었지. 오늘 자네를 이렇게 다시 만난 것 또한 기이한 인연이야.”
선비는 노인이 이미 신선이 되었음을 알고, 눈물을 흘리며 가르침을 구했다. 노인은 말했다. “아직 때가 아니네. 자네는 벼슬길에서 정이품(正二品) 벼슬까지 오를 수 있을 것이야. 단지 '조급하게 나아감(躁進)' 두 글자는 범하지 않도록 하고, '용감하게 물러남(勇退)' 두 글자는 잊지 않도록 하게. 명심하고 또 명심하게. 이제 작별하세.” 말을 마치자, 노인은 강물 속으로 뛰어들어 물 위를 평지처럼 걸어가더니 순식간에 사라졌다. 오직 강 가운데 달빛만 희고 끝없이 펼쳐져 있었다. 선비는 서성이며 슬퍼하다가, 넓은 강물을 바라보며 탄식했다. 종들이 찾아와 그를 찾았고, 선비는 말없이 배로 돌아갔다. 넋이 나간 듯한 날들이 여러 날 계속되었고, 지금까지도 술잔과 차솥 옆에서 문득 그 이야기를 친한 사람들에게 들려주곤 한다고 한다.
난암(蘭岩)이 말했다. “수련하는 방법도 없고, 단약(丹藥)도 없이, 순식간에 신선이 되다니, 어찌 그리 쉽단 말인가! 내 생각에는 이 노인 또한 늙어 죽었을 뿐이고, 그 혼이 하늘 밖으로 떠돌다가 갑자기 무엇인가 만난 듯한 것이지, 정말로 신선이 그를 이끌어 산으로 들어간 건 아닐 것이다. 그것도 아니라면, 아마도 선비가 낮잠을 자다가 생각이 꿈이 된 것뿐일 것이다. 마치 초록몽(蕉鹿夢)과 같은 것이리라. 천하의 일은 마땅히 이처럼 보아야 할 것이다."
원문
閣學某先達,齠齔時,出就外傅。每過市,輒就一賣餅翁,市胡餅數枚,懷之到塾,習以為常。一日,複往市餅,翁忽罷業,留公坐而謂之曰:「吾觀子神氣清明,非凡品也,會將有一事奉邀,能從我乎?」公曰:「何事?」翁曰:「請留此宿,至晚當自知耳。」公自分幼少,稍遲歸,老母且倚閣望,詎容外宿,因辭焉。翁嘆曰:「我固知子不能主也。然亦緣分使然,聊言之耳。」
次日,公早過其肆,見多人環觀如堵,不解何故,挨入視之,則賣餅翁死矣。不覺心為之惻,歸告於母,並述疇昔之言。母嘆異,未嘗不以未赴其約之為深幸也。
迨後十餘年,公及第,入翰林,給假歸祭,泊舟於江滸。公偶上岸閒步,不覺行遠,驀一人自林間來,呼曰:「太史公別來無恙?」急識之,則賣餅翁也。訝曰:「叟哪得在此?」翁把公臂坐樹底,笑曰:「想君必謂我為鬼物矣。吾明告君,昔吾所以約君者,以君有仙骨故也。惜君俗緣未盡耳。彼日夜靜寢未安,聞市頭來往無停履,起窺窗隙,見鬼神其形者甚夥,除道相戒:『真人赴嶽廟,不可怠慢』,雲云。予時無所顧慮,潛出後門,由僻弄迂路至廟,廟前虛闃無人,殿後亦無所見,唯一丐者,鶉衣鵠面,當階鼾睡,呼之不醒,但聞噓聲啡啡,知其有異,長跪其旁以伺,良久始覺,問何為,予稽首稱真人,丐大怒,辱詈百端,予敬謹如故。丐起身且罵且去,予隨之。繞出廟後,罵愈厲,予終不少卻,丐乃輟罵,縱步如飛,予亦急走相逐,不離跬步,力亦不少乏。指顧間,入一深山,丐攀附滕葛,步履如猿猱之捷。心無退悔,頗能及之。至極巔,路窮只一獨木略彴直接對山,相對約數丈,下臨絕壑。丐回顧曰:『子之誠,我深喻之,至此可以止也。』予應之,曰:『上天下地,悉請相從,豈肯止此?』丐複怒罵,徑履木而過,予力攬其裾,與之俱,丐極力攜擠,不覺失足墮澗中,予大呼,騰擲一躍,而登對山之頂,回首俯視,見自身殭臥澗下,而亦失丐之所在。恍然大覺,一刻山川大地,千生萬劫,盡皆瑩照,瞬息都過,唯留此心在腔子里,非真非幻,是幻是真。天已向晨,志所入山,則黃山也。自此一身輕捷,任意飛行。今得相逢,亦異數也。」
公知其已仙,泣拜求度,翁曰:「尚非其時也。君於名場中,官可二品,唯『躁進』二字不可犯,『勇退』二字不可忘,志之志之,請從此別。」言訖,躍入江中,履水如平地,轉瞬而逝,唯剩江心月白,一望無涯。公徘徊悵悒,望洋則嘆。僕從來覓,默然歸舟,神往者屢日,訖今於酒樽茶灶邊每舉以告所親云。
蘭岩曰:
無修煉法,無丹鼎藥,倏而成仙,何其易也!予意此翁亦老死耳,魂游天外,惚如有所遇,非真有仙人引之入山也。不然或先達午倦,思想成夢,與蕉鹿等耳。天下事當作如是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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