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야담수록(夜譚隨錄) 번역13

[권1] 14. 장오(張五) 현령(縣令) 아무개는 심한 경계증(驚悸症)을 앓고 있어, 밤낮으로 가슴이 두근거리고 불안해했다. 항상 집안 식구 수십 명을 모아 밤새도록 등불을 켜고 빙 둘러서 있게 했는데, 그런데도 밤마다 몇 차례씩 놀라 일어났고, 이런 일이 보름 넘게 계속되었다. 한편 동네에 장오(張五)라는 사람이 있었는데, 나이 마흔이 조금 넘었고, 예전부터 두부 장사를 해왔다. 늘 새벽닭이 울 무렵에 일어나곤 했는데, 어느 날은 평소보다 더 이른 사경(四更)에 일어났다. 그는 아내에게 두부 만들 준비를 부탁하며 말했다. “오늘은 좀 너무 이른 거 아니에요?” 하고 아내가 묻자, 장이 말했다. “하루 힘써 일하지 않으면 하루 먹을 게 부족하잖소. 일찍 만들어야 일찍 팔고, 그게 얼마나 좋은 일이오. 당신은 불 좀 켜주오. 나는 잠.. 2025. 4. 22.
[권1] 13. 진보사(陳寶祠) 포동(蒲東)의 두양(杜陽)은 자질이 빼어나고 용모가 아름다웠다. 나이는 스무 살이 되도록 미혼이었다. 옹정제(雍正) 초년에 그는 외삼촌을 따라 흥안(興安)으로 장사를 나갔다. 외삼촌은 나이가 많아 주로 포목점을 지켰고, 두양에게 물건을 팔도록 하여 진(秦)과 진(晉) 사이를 오갔는데, 1년에 보통 두 차례씩 다녔다.어느 날, 두양은 포사(褒斜)에서 출발해 잔도(棧道)로 들어섰다. 산길이 험해 고생하던 중에 호랑이 한 마리가 나타나 하인을 채어갔다. 두양은 놀라고 당황한 나머지 발을 헛디뎌 깊은 골짜기로 떨어졌다. 다행히 낙엽이 깔려 있어 다치지 않았다. 머리를 들어보니 사방의 산이 구름 속에 묻혀 있었고, 나갈 길을 찾을 수 없었다. 이윽고 날은 저물고 숲은 어두워져 시냇물 소리만 요란했다. 그는 바위에.. 2025. 4. 21.
[권1] 12. 홍고낭(紅姑娘) 경성(京城)의 적루(敵樓)는 안팎으로 모두 쉰 곳이었는데, 그 규모는 높고 깊어 여우나 쥐가 자주 깃들었다. 내성(內城) 동북쪽 모퉁이에 있는 각루(角樓) 안에도 여우 한 마리가 있었는데, 여자로 변해 붉은 웃옷에 비취색 치마를 입고 나타났다. 나이는 대략 열여섯에서 열일곱 살쯤 되어 보였고, 그 아름다움은 이루 말할 수 없었다. 성을 지키는 병사들이 자주 그녀를 목격했다. 모두가 사람이 아님을 알았지만 정신을 차리지 못하고 미혹되었다. 그녀가 붉은 옷을 입었기에 다들 ‘홍고낭(紅姑娘)’이라 불렀다.때로는 경박한 젊은이들이 달 밝은 밤에 술김에 색욕이 일어나, 누각 아래로 가서 저질스러운 말로 유혹하곤 했다. 그러면 누각 위에서 부드러운 음성이 들려왔다.“그렇게 멋대로 굴지 마세요.”그 후 집으로 돌아가.. 2025. 4. 19.
[권1] 11. 소중분(蘇仲芬) 태학(太學) 소괴(蘇桂)는 자가 중분(仲芬)이었다. 과거를 준비하며 도성에 올라와 왕(王) 급간(給諫)의 가정교사가 되었다. 왕은 양가원(梁家園) 근처에 살았는데, 그곳은 성 밖이어서 지극히 외지고 황폐했다. 왕은 거처가 시장과 가까워 문 앞이 복잡한 것을 걱정하여, 제자들을 따로 거처하게 할 몇 칸짜리 집을 따로 구하려 했다.마침 인가가 모인 곳에 빈집 한 채가 있었는데, 팔기 위해 자물쇠를 채워둔 상태였고 거리 하나만 두고 떨어져 있었다. 왕은 거리가 가까운 것을 마음에 들어 하여 백금으로 집 문서를 바꾸었다. 황무지를 개간하고 오물을 치우며 벽에 회칠하고 창문에 종이를 바르는 데에 또 수십 금이 들었으나, 마침내 집이 새롭게 단장되었다. 왕은 중분과 하인 하나, 동자 하나를 그곳에 살게 했다. 왕의.. 2025. 4. 19.
[권1] 10. 매병옹(賣餅翁) 각학(閣學)을 지낸 어떤 선비가 어렸을 때 서당에 다녔다. 매번 시장을 지날 때마다 늘 한 노인에게 가서 호떡 몇 개를 사서 품에 넣고 서당에 가는 것을 습관처럼 여겼다. 어느 날, 다시 호떡을 사러 갔는데, 노인은 갑자기 가게 문을 닫고 그를 앉히더니 말했다. “내가 보니 네 신기가 맑고 밝으니, 범상한 인물이 아니다. 장차 네게 부탁할 일이 있을 터인데, 나를 따르겠니?”선비가 “무슨 일이세요?”라고 묻자, 노인은 “오늘 밤은 여기서 자거라. 저녁이 되면 저절로 알게 될 거야.”라고 말했다. 선비는 자신이 어려서 조금이라도 늦게 돌아가면 노모께서 집 벽에 기대어 기다리실 텐데, 어찌 감히 밖에서 잘 수 있겠느냐며 거절했다. 노인은 탄식하며 말했다. “나는 네가 스스로 결정할 수 없다는 것을 알고 있었.. 2025. 4. 17.
[권1] 8. 모승(某僧) 『명경석삼(銘鏡石三)』에 실린 예언 중 세 번째 이야기다.우성사(佑聖寺)에 범상치 않은 상인(上人, 뛰어난 스님)이 있었는데, 그에게 어느 제자가 있었다. 이 제자는 젊고 준수하였으며, 누군가 그를 꾀어 남색 행위를 하게 하였고, 그는 거절하지 않았다.상인이 이 일을 듣고 꾸짖자, 제자가 말했다.“그렇다면 그렇게 해서는 안 되는 것입니까?”상인이 말했다.“어찌 그리할 수 있겠느냐! 이곳에는 더 이상 머무를 수 없느니라.”제자가 말했다.“그렇다면 떠나도 되겠습니까?”상인이 말했다.“그러하니라.”제자가 말했다.“스님의 명을 받들겠습니다. 아무 날에 떠나겠습니다.”약속한 날이 되자, 그의 방은 고요하기만 했다. 들여다보니, 그는 이미 사라진 뒤였다. 난암(蘭岩)이 말한다.온통 천진한 본연의 모습이었고, 대도(.. 2025. 4. 16.
[권1] 7. 홍유의(洪由義) 홍유의(洪由義)라는 사람은 정원(靖遠) 협신(協汛)의 한 하급 군인이었다. 그는 성품이 어질고 착하여 살아있는 걸 방생하는 걸 좋아했다. 한가한 때면 황하(黃河) 강가에 앉아 어부가 그물을 걷는 것을 보았는데, 그물에서 버려지는 작은 물고기나 새우, 그리고 소라나 방합(蚌蛤) 같은 것들을 모두 주워 물속에 던져주었다. 이렇게 하기를 여러 해 동안 게을리하지 않았다.어느 날 강을 건너다가 발을 헛디뎌 물에 빠져 물결을 따라 십여 리를 떠내려갔다. 정신이 흐릿한 가운데 누군가가 팔을 잡아끌어 어디론가 데려가는 것을 느꼈다. 정신을 차려 보니, 큰 문 아래에 있었다. 사방에 황토색 물이 벽처럼 둘러싸여 있었다. 문 앞에는 두 개의 큰 돌 거북 모양 조각상이 있었고, 그 넓이는 대략 몇 무(畝) 정도 되어 보였.. 2025. 4. 15.
[권1] 6. 이교지(李翹之) 석공 이교지(李翹之)는 이름이 임괴(林魁)이고 오대산(五臺山) 사람이었다. 그가 미천했을 때 석공으로 생계를 유지했는데, 일찍이 동료 열댓 명과 함께 마을에 연극을 보러 갔다가 2경(二更)이 되어서야 돌아왔다. 그믐날이라 밤이 칠흑같이 어두워 걷기조차 힘들었는데, 갑자기 산천과 대지가 환하게 밝아지더니 정면으로 십여 리 떨어진 곳에 보살의 거룩한 모습이 나타났다. 그 높이는 수십 장에 달했고, 옷의 무늬와 영락(瓔珞)은 노을처럼 찬란했으며, 달 같은 얼굴과 별 같은 눈썹은 화려하지 않은 곳이 없어 온 세상이 유리처럼 투명하게 비쳤다. 이교지는 우러러보며 절하고, 입으로 염불끊임없이 외웠다. 잠시 후 그 모습이 사라졌고, 동료들에게 물어보니 아무도 본 사람이 없었다. 이교지는 올해 나이가 일흔을 바라보는데.. 2025. 4. 14.
[권1] 5. 용화(龍化) 이고어(李高魚)는 침벽산방(枕碧山房)의 벽에 오래된 검을 걸어 두었다. 어느 날 큰비와 천둥이 치던 날, 그는 한 척 남짓한 검은 물체가 보였다. 그것은 실처럼 가늘었고, 뒤에는 붉은 실이 뒤따르고 있었다. 그것은 창문을 통해 날아 들어와 방 안을 날아다니다가 곧 벽으로 날아갔다. 그리고 검집 안으로 들어가니, 쨍그랑거리는 소리가 들렸다. 그것은 잠시 후 다시 나왔다가 다시 들어갔고, 아무런 방해도 받지 않았다. 한참 후, 그것은 갑자기 다시 날아올라 꿈틀거리며 움직였고, 그것이 처마에 닿자마자 벼락이 집 전체가 흔들리고 붉은빛이 하늘을 밝혔다. 두 물체가 어디로 갔는지 알아볼 겨를도 없이, 창문 아래에 천산갑과 매우 흡사한 비늘 몇 조각이 떨어져 있는 것만 보았다. 검을 꺼내 보니 날카로운 칼날에 벌레.. 2025. 4. 1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