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야담수록(夜譚隨錄) 번역

[권1] 14. 장오(張五)

by 까오싱 라오스 2025. 4. 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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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령(縣令) 아무개는 심한 경계증(驚悸症)을 앓고 있어, 밤낮으로 가슴이 두근거리고 불안해했다. 항상 집안 식구 수십 명을 모아 밤새도록 등불을 켜고 빙 둘러서 있게 했는데, 그런데도 밤마다 몇 차례씩 놀라 일어났고, 이런 일이 보름 넘게 계속되었다. 한편 동네에 장오(張五)라는 사람이 있었는데, 나이 마흔이 조금 넘었고, 예전부터 두부 장사를 해왔다. 늘 새벽닭이 울 무렵에 일어나곤 했는데, 어느 날은 평소보다 더 이른 사경(四更)에 일어났다. 그는 아내에게 두부 만들 준비를 부탁하며 말했다.

오늘은 좀 너무 이른 거 아니에요?” 하고 아내가 묻자, 장이 말했다.

하루 힘써 일하지 않으면 하루 먹을 게 부족하잖소. 일찍 만들어야 일찍 팔고, 그게 얼마나 좋은 일이오. 당신은 불 좀 켜주오. 나는 잠깐 변소에 다녀오겠소.”

 

장이 문을 열고 골목 안으로 들어서, 막 화장실에 가려던 찰나 문득 두 사람이 앞을 지나며 그를 불렀다.

장오, 이쪽이오! 이리 와요!”

장은 평소 아는 사람들인 줄 알고, 그들을 따라 골목 어귀까지 갔다. 셋이 함께 어느 집 처마 밑에 섰다. 그제야 장이 자세히 보니, 두 사람은 생전 처음 보는 얼굴들이었다. 둘 다 푸른 옷을 입고, 녹색 끈을 드리운 머리띠를 하고 있었다. 머리에는 붉은 갓을 썼으며, 손에는 붉은색 문서(朱票)를 들고 있었다. 모습이 꼭 관청의 아전 같았다. 그들은 장에게 말했다.

부탁할 일이 하나 있소. 거절하면 안 되오.”

장이 무슨 일입니까?” 하고 묻자, 그들은 꼭 알 필요는 없고, 일단 우리와 함께 가시오.” 하고는 동쪽으로 걸어가기 시작했다. 장의 마음은 몹시 내키지 않았지만, 두 다리는 제멋대로 움직여 어쩔 수 없이 비틀거리며 따라갔다. 장터를 돌아 나가 결국은 현령의 관아 앞마당까지 이르렀다. 대문 아래에는 갑옷을 입은 여섯 명이 서 있었고, 키가 모두 여덟아홉 척에 달했다. 두 아전은 감히 그 앞으로 나가지 못하고, 뒷문 쪽으로 돌아가 물길이 통하는 작은 도랑 앞에 이르렀다. 그들은 장에게 먼저 들어가라고 했다. 장이 거절하자, 그들이 장을 밀었고, 그는 어느새 담 안으로 들어와 있었다. 곧 두 사람도 뒤따라 들어왔다. 높은 담을 몇 겹이나 지나, 마침내 관저 안 침소까지 이르렀다. 창문 위로는 불빛이 환하게 비치고 있었다. 아전이 장에게 안을 들여다보라고 했다. 장이 엿보니, 현령 아무개가 침대에 누워 끙끙 앓고 있었고, 침대 모서리와 발치 주변엔 남녀 여덟아홉 명이 함께 모여 앉아 있었다.

장은 그 내용을 아전들에게 보고했고, 두 사람도 함께 와서 들여다보았다. 이때가 새벽 다섯 경 무렵이었는데, 아전들은 다소 초조한 기색으로 자꾸 안을 살폈다. 잠시 뒤, 현령의 상태가 조금 나아졌고, 남녀들도 모두 지쳐 있는 모습이었다. 어떤 이는 코를 골며 드러눕고, 어떤 이는 널브러져 잤다. 두 아전은 기뻐하며, 급히 쇠사슬 하나를 꺼내 장에게 건네며 말했다.

어서 이 사슬로 현령의 목을 묶고 끌어내시오! 무서워하지 말고요!”

장오가 깜짝 놀라며 말했다. “그분은 관직에 있는 높으신 분이오. 제가 무슨 사람이기에 감히 가까이 가겠소?”

아전들이 말했다. “그는 비록 관직에 있지만, 재물을 탐하고 여색을 좋아하며, 무고하게 사람을 죽이고 혹형을 일삼은 자요. 이제는 죄인일 뿐이니, 더 이상 두려워할 것도 없소.”

장이 망설이며 물러섰으나, 두 아전은 급히 그를 밀어 방안으로 들여보냈다. 장은 당황한 나머지, 어쩔 수 없이 사슬을 들어 현령의 목에 걸고 달아났다. 아전들이 그를 맞이했고, 세 사람은 아까 왔던 길을 따라 되돌아갔다. 뒤를 돌아보니, 현령이 실제로 목에 사슬이 걸린 채 함께 따라오고 있었다. 그는 아무 말 없이 묵묵히 끌려왔다. 장은 그 모습을 보고 크게 놀랐다.

 

막 집 뒤편에 이르자, 담장 그늘에서 한 남자와 한 여자가 음탕한 짓을 하고 있었는데, 조금도 부끄러운 기색 없이 버젓이 행동하고 있었다. 두 아전이 그 옆을 지나가자, 장이 물었다.

저 사람들은 누구요? 어찌 저리 공공연히 음란한 짓을 하고 있으면서도 부끄러워하지 않소?”

아전이 현령을 가리키며 장에게 말했다.

저 여자는 바로 저자의 총첩인 취화(翠華), 남자는 그의 총애하는 남색(男色) 소년 정록(鄭祿)이오. 현령이 병들어 누운 틈을 타 둘이 여기서 몰래 약속해 만난 것이오. 저들은 지금도 자기들이 숨은 줄 알고 있지만, 어찌 우리가 다 보고 있는 줄이나 알겠소?”

장이 그 말을 듣고 현령을 쳐다보며 웃자, 현령은 고개를 푹 숙이고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수구(水竇) 앞에 이르자, 다시 두 사람이 기다리고 있었다. 그들도 두 아전처럼 차림새를 갖추고 있었고, 역시 어떤 사람 하나를 포박하여 머리를 숙이고 서 있게 하고 있었다.두 아전이 물었다.

이미 붙잡았소?”

그들이 대답했다.

붙잡았소.”

그 사람은 현령을 보자 울음을 터뜨리려 했고, 아전은 급히 그의 뺨을 때려 울음을 막았다. 장이 은밀히 그가 누구냐고 묻자, 아전이 말했다.

저 자는 현령의 부하인데, 형벌을 주관하던 곽 아무개(郭某). 죄를 함께 지었기에 같이 잡혀 온 것이오.”

이야기를 나누던 중, 관저 안쪽에서 울음소리가 여기저기서 터져 나왔다. 아전이 말했다.

때가 되었군.”

그들은 곧 시장 입구로 나왔다. 미리 큰길에서 두 명이 죄인을 태우는 수레 두 대를 끌고 기다리고 있었다. 네 명의 아전은 현령과 곽을 각각 수레에 태웠다. 그들은 장에게 당부했다.

그대는 이제 집으로 돌아가시오. 이 일을 절대 다른 이에게 말하지 마시오.”

말이 끝나자, 아전들은 수레를 몰아 소를 몰고 사라졌다.

 

장이 집에 도착하자 닭이 이미 울고 있었다. 집 안에는 아내가 등불을 등지고 앉아 울고 있었고, 이웃 부인 서너 명이 곁에서 달래며 말했다.

죽은 사람은 다시 살 수 없는 법이에요. 하늘이 이미 정해둔 운명이니 어쩔 수 없지요. 그래도 아직 숨이 끊기진 않았으니, 날이 밝는 대로 의원을 부르면 괜찮아질지도 몰라요.”

이 말을 들은 장은 깜짝 놀라 소리를 질렀고, 마치 꿈에서 깨어나듯 정신이 번쩍 들었다. 눈을 떠보니, 자신은 방 안 아랫목에 누워 있었고, 아내는 곁에서 지키고 있었으며, 방 안은 이웃 사람들이 북적이고 있었다. 장은 탄식을 멈추지 못했다. 아내는 그가 다시 깨어난 것을 보고 놀람과 기쁨이 뒤섞인 얼굴로 안도했다. 장이 물었다.

왜 울고 있었소?”

아내가 말했다.

당신이 화장실 간다더니 너무 오래 돌아오지 않길래, 내가 나가 보았더니 당신이 처마 밑에 쓰러져 죽은 듯 누워 있었어요. 이웃 사람들에게 부탁해 안으로 옮겼는데, 손발은 따뜻한데 아무리 불러도 깨어나지 않았지요. 사경(四更)부터 지금까지, 벌써 한밤중을 다 지나도록 이랬어요. 그런데 이렇게 다시 살아나다니, 이게 무슨 다행입니까!”

장은 그제야 자신이 겪은 모든 일이 혼이 빠져나가 겪은 것임을 깨달았다. 그는 일어나 이웃 부인들에게 절하며 감사했고, 사람들은 기뻐하며 돌아갔다. 그제야 장은 자신이 겪은 일을 아내에게 모두 이야기했고, 아내 또한 놀라고 감탄해 마지않았다. 날이 밝을 무렵, 온 성안은 온통 소란에 휩싸였다. 군사와 백성 모두 들떠 있었고, 모두가 말하기를, “현령이 오경(五更)에 죽었다.” 하였다. 그 비서였던 곽 아무개 또한 같은 시각에 갑자기 죽었다는 소문도 퍼졌다.

 

장이 입을 조심하지 못하고 점차 그날 밤 있었던 일을 사람들에게 흘리게 되었다그 소문을 현령의 아들이 듣고는 크게 분노하여 장을 붙잡아 관아에 넘겼다. 장은 곤장 서른 대를 맞았다. 이후 관에서는 정록과 취화의 간통 사실을 조사했고, 과연 사실로 밝혀졌다. 정록은 관아 앞에서 곤장을 맞았고, 옥에 갇힌 뒤 결국 병들어 죽었다. 취화는 정원에서 목을 매어 죽어 죗값을 치렀다.

 

이 사건은 옹량(雍涼, 지금의 섬서·감숙 지역) 지방에서 일어난 일로, () 지역 사람들은 지금까지도 이 이야기를 전하고 있다. 그 이야기를 듣던 은모선(恩茂先)이 말했다.

정말입니다. 저희 할아버지도 예전에 이 이야기를 직접 들려주셨죠.”

 

난암(蘭岩)이 말한다.

 

죄악이 가득 차면, 하늘은 그 복을 거두어 간다. 귀신이 그를 능욕하고, 백성이 그를 조롱한다. 한때 백성을 내려다보며 위세를 떨치던 자가, 이제 그 권세는 어디에 있단 말인가? 저승사자가 직접 목에 사슬을 채우지 않고 굳이 장의 손을 빌린 것은, 능력이 없어서가 아니다. 장은 그 악행을 똑똑히 보았기에, 세상에 드러낼 수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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